인사말 / 박사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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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희노애락의 예술이다.
안녕하세요^^ 매일 2만보를 실천하는 힐링과 소통전문가인 한광일입니다.
세계예술치유박사위원회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웃음치료사, 소통강사, 힐링지도사 등 30여가지 직업 및 자격증을 창시하여 지도자를 양성하였습니다.
 웃음치료, 스트레스치료법, 펀경영리더십, 이기는 펀리더십 등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 45권의 저서와 KBS, MBC, SBS, 미국, 독일 방송 및 전국 명사특강 9,800회와 재능기부강연 1,070회를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퇴학생이 연세대 석사(전과목 만점), 서울대 박사수료, 국내 최초설립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누적 수강생 220만명)의 석좌교수와 세계왕대회 대회장, 사)국제웃음치료협회 회장, 한국강사은행 총재, 세계예술치유박사위원회 총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론사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수십만건이상 노출, 검증, 인증받고 있습니다.

본 위원회는 대학의 학위가 아닌 명예호칭으로 한분야에서 10, 20년이상 교육과 봉사해온 분에게 수여하는 것입니다.
  웃음박사, 소통박사, 예술치유박사는 누구나 열려있고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단 최선을 다할때입니다. 본 위원회는 협찬금을 받지않습니다. 오직 사명감으로 교육과 봉사하는 전문가를 환영합니다.
각 분야에서 존경과 사랑받는 분만 이곳에 추천할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8월 8일 WACC
세계예술치유박사위원회 총재 한광일
World Art Cure Committ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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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라 즐겨라 미쳐라 ☆ 강연은 종합예술이다

□박사(博士)의 의미□

■ 어떤 일에 정통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국어사전)

■ 학력,지식,이론,머리의 시대가 아니라
경험,지혜,실무,가슴의 시대가 왔다.
예수님,부처님,공자님은 대학나오지 않아도 가장 존경받고 있다.
[세계예술치유박사위원회 WACC설립자 한광일]

■미래 예견 50년 내에 세계 각 대학교 10개 남고 다 사라질 것
•컴퓨터 자동화와 기술발전에  따라 현재 직업 47% 20년안에 사라질 것 

•가장 안전한 직업 
1위  레크리에이션을 활용한 치료전문가
15위 내과외과 의사
34위 큐레이터
42위 성직자
271위 판사
282위 경제학자

●웃음치료사(지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 7위
•직업만족도 17위 선정

영국 록스퍼드 마틴스쿨 칼배네딕트 프레이교수와 마이클 오스본교수 고용의 미래 : 우리직업은 컴퓨터화에 얼마나 민감한가? 2013년 발표 

■ 교수(敎授)의 임무를 맡거나 전문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주던 벼슬.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ㆍ홍문관ㆍ규장각ㆍ승문원 따위에 두었다.
정의 : 고대의 교육을 맡아 보던 관직.
내용 : 박사는 학식이 박통(博通)한 자로 임명되었는데, 이 제도가 처음으로 생긴 것은 중국 진(秦)나라 때 박사를 두어 고금(古今)의 학문을 맡게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뒤이어 한나라 때는 9경(卿)의 하나인 태상(太常)의 속관(屬官)으로 박사를 두었고, 동중서(董仲舒)는 춘추(春秋)로써 박사가 되었으며, 무제(武帝) 때는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어 자제를 교육하였다.
다시 진(晉)나라 때는 국자박사(國子博士)·율학박사(律學博士) 등을 두었고, 당나라 때는 국자박사·태학박사(太學博士)·사문박사(四門博士)·율학박사·산학박사(算學博士)·의학박사 등을 두었으며, 명·청 때는 국자박사·태상박사(太常博士)를 두었는데, 태상박사는 교육보다도 의례에 관한 찬술과 시호(諡號) 제정 등의 일을 맡았다.
우리 나라에서 박사의 관직이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중국에서 위만(衛滿)이 망명해 오자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그를 신임하고 총애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100리의 땅을 주었다는 기록이 그 최초이다. 그러나 그 박사가 학식이 박통해서 임명한 것인지, 또는 고조선의 어떠한 고유의 관직을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의 표기인지 확실하지 않다.
박사의 관직제도가 확실히 행해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00년(영양왕 11) 고구려의 태학박사 이문진(李文眞)이 전해 오던 ≪유기 留記≫ 100권을 고쳐서 ≪신집 新集≫ 5권을 편찬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으로 고구려에 박사의 관직제도가 행해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 태학(太學)이라 함은 고구려의 중앙 최고의 대학으로, 이를 통해 볼 때 고구려의 태학에는 박사를 두어 자제의 교육을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高興)이 ≪서기 書記≫를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으로 백제에 박사라는 관직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일본서기 日本書紀≫ 등 일본의 고대 사료에 의하면, 백제에서 박사 왕인(王仁), 오경박사(五經博士) 고안무(高安茂), 박사 단양이(段楊爾) 등이 일본에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밖에 백제의 의박사(醫博士)·역박사(易博士)·역박사(曆博士) 등을 교대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을 보면 백제에도 일찍부터 박사의 제도가 있어, 오경 등 경학(經學)에 관한 박사를 비롯하여 의학·역학 등의 각종 전문 분야에 관한 박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는 682년(신문왕 2) 중앙 최고의 국립대학인 국학(國學)을 설치하고 박사를 두어 자제에게 유학을 교육하였다. 또, 국학의 학생에게는 유학 이외에 산학박사를 보내어 산술에 대한 교육도 행하였다.
이 밖에 신라에는 누각전(漏刻典)에 누각박사 6인을 두어 물시계에 관한 학문연구와 교육을 실시하였고, 의학박사를 두어 의학을, 천문박사(뒤에 사천박사로 고침)를 두어 천문학을, 율령박사를 두어 율령(律令)을, 통문박사(通文博士)를 두어 문학을 교육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